남편이 유난히 예뻐하는 일곱 살 조카 준우가, 사실은 남편이 형수와 낳아 형 집에 숨겨둔 아들이라는 것을 — 혈액형 하나로 — 알아차리는 간호사 지수의 이야기.
1부 대본 전문 (S#1–S#9) 펼쳐 보기
등장인물: 한지수(35, 간호사, 아내) / 서태혁(39, 남편) / 서준우(7, 조카) / 최미란(38, 형수) / 서태준(42, 형) / 오정숙(68, 시모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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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#1. 시가 옥상 — 준우 생일파티 (낮)
고기 굽는 연기, 알록달록한 풍선. 현수막에 「우리 준우 7번째 생일 ♥」. 태혁이 준우를 목말 태우고 옥상을 빙빙 돈다. 박수 치는 가족들. 지수만 접시를 든 채 반 발짝 떨어져 있다.
태혁: (준우를 번쩍 들어올리며) 우리 준우! 삼촌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게 누구다?
준우: (까르르 웃으며) 나! 서준우!
정숙: (흐뭇하게 손뼉 치며) 아이고, 저 웃는 것 좀 봐라. 피는 못 속인다니까.
일순 웃는 가족들. 지수, 따라 웃다가 문득 멈춘다. 목말 위에서 웃는 준우의 입꼬리 — 오른쪽만 비스듬히 올라간다. 카메라, 그 아래 태혁의 웃는 입꼬리로 내려온다. 같은 각도.
지수: (내레이션) 그날 처음 봤다. 세상에 저렇게 똑같이 웃는 삼촌과 조카가 있다는 걸.
미란: (지수의 시선을 눈치채고, 급히 케이크를 들며) 자자! 촛불 끄자, 준우야! 어서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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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#2. 시가 부엌 (낮)
산더미 같은 설거지. 지수가 씻고 미란이 닦는다. 옥상에서 준우와 태혁의 웃음소리가 계속 내려온다.
지수: (웃으며, 지나가듯) 형님, 근데 준우는 참 신기해요. 아주버님보다… 저희 그이를 더 닮았어요.
쨍그랑— 미란의 손에서 접시가 미끄러져 깨진다.
미란: (황급히 쪼그려 앉아 조각을 주우며) 아유, 내 정신 좀 봐. 손에 물기가 있어서.
지수: (같이 앉아 주우며) 손 다쳐요, 형님. 제가 할게요. …아 맞다, 준우 이번에 학교 들어가죠? 서류에 혈액형 쓰던데, 준우 무슨 형이에요?
미란: (조각을 줍던 손이 멈칫) …그런 걸 뭘 써. 요즘은 안 써, 그런 거.
지수: 그래요? 우리 병원 입학검진에는 있던데.
미란: (일어서며, 등을 돌린 채) 몰라, 나. 애 아빠가 알아. …옥상에 수박 더 갖다줘야겠다.
미란, 수박도 안 들고 급히 나간다. 지수, 깨진 접시 조각을 손에 든 채 그 뒷모습을 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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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#3. 귀갓길 차 안 (밤)
운전하는 태혁, 기분이 좋다. 조수석의 지수, 창밖을 본다.
태혁: 준우 그 녀석, 태권도 승급했다? 다음 달에 시합 나간대. 내가 도복 새로 사주기로 했어.
지수: …당신은 준우 얘기 할 때가 제일 행복해 보여.
태혁: (웃으며) 조카니까. 하나뿐인 조카.
지수: (조용히) 여보. 우리도… 아기 있었으면, 당신 저렇게 웃었을까.
정적. 태혁의 손이 핸들을 고쳐 잡는다.
태혁: (정색, 낮게) 지수야. 그 얘기 좀 그만하자. 병원에서도 안 된다고 했잖아.
지수: 안 된다고 한 적 없어. 원인불명이라고 했지. 그래서 다음 주에 나 5차 이식 들어가잖아. 당신이 같이 가주면—
태혁: (말 자르며) 나 다음 주 출장이야. (사이, 부드럽게 손을 뻗어 지수 손을 잡으며) …난 지금이 좋아. 우리 둘이면 충분해.
지수: (내레이션) 5년. 내 배에 주사를 놓은 게 백서른두 번. 그 숫자를 세는 사람은 이 차 안에 나 하나뿐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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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#4. 대학병원 응급실 (낮)
일주일 뒤. 간호사복의 지수, 차트를 들고 바쁘게 움직인다. 응급실 문이 벌컥 열리고 미란이 축 늘어진 준우를 안고 뛰어들어온다.
미란: (울부짖으며) 선생님! 애가, 애가 숨을 못 쉬어요! 새우 먹고 갑자기—
지수: (달려가며) 준우야! …형님?! (소리치며) 아나필락시스! 에피네프린 준비해주세요!
침대에 눕혀지는 준우. 의료진이 달라붙는다. 처치가 이어지고 — 이윽고 준우의 호흡이 돌아온다. 주저앉는 미란. 지수, 안도의 숨을 쉬며 모니터 옆 차트를 집어 인적사항을 확인하다가, 멈춘다.
차트 클로즈업 — 「서준우 / 7세 / 혈액형: AB+」
지수: (혼잣말, 들릴 듯 말 듯) …AB형?
지수: (내레이션) 간호사는 차트를 믿는다.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, 피는 하지 않으니까.
지수,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침대 옆에서 준우 손을 잡고 우는 미란을 본다.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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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#5. 병원 기록실 (밤)
당직 근무. 어두운 기록실, 모니터 불빛만 지수 얼굴을 비춘다. 검색창에 「서태준」. 작년 가족 건강검진 기록이 뜬다.
모니터 클로즈업 — 「서태준 / 혈액형: O+」 「최미란 / 혈액형: O+」
지수: (떨리는 혼잣말) O형이랑 O형은… AB형 자식이 나올 수가 없어.
지수, 키보드 위 손이 떨린다. 천천히, 한 글자씩 입력한다. 「서·태·혁」.
모니터 클로즈업 — 「서태혁 / 혈액형: AB+」
지수, 의자 등받이에 몸이 무너진다. 화면 불빛 속에서 S#1의 장면이 플래시백으로 스친다 — 같은 각도로 올라가던 두 개의 입꼬리. "피는 못 속인다니까."
지수: (내레이션) 어머님 말씀이 맞았다. 피는, 못 속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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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#6. 지수의 아파트 욕실 / 유전자 검사소 (낮)
몽타주 —
#[몽타주 — 검체 수집]
- 욕실. 지수, 위생장갑을 끼고 태혁의 칫솔을 지퍼백에 넣는다. 새 칫솔을 뜯어 그 자리에 꽂는다.
- 냉장고. 생일파티 날 챙겨온 주스 팩 — 준우가 물었던 빨대를 지퍼백에 넣는다.
- 검사소 창구. 「친자확인 유전자검사 신청서」 위를 미끄러지는 지수의 펜. 의뢰인 란에 「한지수」.
직원: (사무적으로) 결과는 2주 뒤에 나오세요. 등기로 받으시겠어요?
지수: (지퍼백 두 개를 내려놓으며) …아뇨. 제가 직접 올게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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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#7. 지수의 아파트 — 태혁의 서재 (밤)
태혁 출장 중. 지수, 서재 책상 앞에 선다. 잠긴 서랍. 지수, 화분 밑에서 열쇠를 찾아낸다 — 손에 익은 동선. 서랍이 열린다.
통장 하나. 지수, 넘긴다. 매달 15일마다 반복되는 줄 —
통장 클로즈업 — 「이체 최미란 1,500,000 / 이체 최미란 1,500,000 / 이체 최미란 1,500,000 …」 수년치가 빼곡하다.
지수: (숨이 가빠지며) 매달… 백오십을…
지수, 서랍 안쪽을 더 뒤진다. 낡은 서류봉투. 뜯는다. 병원 영수증 한 장이 떨어진다.
영수증 클로즈업 — 「OO비뇨의학과 / 정관절제술 / 시술일: 5년 전 날짜」
지수,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. 봉투 안의 동의서를 꺼낸다. 「배우자 동의서」 — 서명란에 「한지수」. 지수의 필체가 아니다.
지수: (동의서를 움켜쥐며, 무너지듯 주저앉아) 백서른두 번… 나 혼자 백서른두 번을…
플래시백 — S#3, 차 안. "난 지금이 좋아. 우리 둘이면 충분해." 부드럽게 손을 잡던 태혁.
지수: (내레이션) 5년의 시험관. 그 사람은 처음부터,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내 배에 바늘을 꽂게 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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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#8. 유전자 검사소 앞 거리 (낮)
2주 뒤. 지수, 봉투를 손에 든 채 거리 한복판에 서 있다. 행인들이 스쳐 지나간다. 봉투를 뜯는 손, 이상하리만치 차분하다.
결과지 클로즈업 — 「검체 A(서태혁)와 검체 B(서준우)의 친자관계 확률: 99.9987%」
지수, 결과지를 오래 내려다본다. 울지 않는다. 반듯하게 접어 가방에 넣는다.
지수: (내레이션) 이상하지. 눈물이 안 났다. 간호사는 검사 결과 앞에서 울지 않는다. 처치를 시작할 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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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#9. 지수의 아파트 현관 (밤)
같은 날 밤. 현관 벨소리. 지수가 문을 연다 — 미란이 서 있다. 화장기 없는 얼굴, 손에 여행가방.
미란: (쫓기는 눈빛으로) 동서. …나 준우 데리고 갈 거야. 멀리. (사이) 동서한테는… 미안해서. 그 말은 하고 가려고.
지수: (문을 잡은 채, 미동도 없이) …뭐가 미안한데요, 형님.
미란: (입술을 떨며) 다 미안해. 근데 동서…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. 준우 낳던 해에 그 사람이 무슨 짓까지 했는지, 동서는 모른다고—
그때, 복도 끝 엘리베이터가 열린다. 출장가방을 끌고 나오는 태혁. 미란, 하얗게 질려 말을 멈춘다.
태혁: (다가오며, 환하게 웃는 얼굴로) 어? 형수님이 웬일이에요, 이 시간에. (지수에게 자연스럽게 입맞추려 하며) 나 왔어. …근데 무슨 얘기 중이야?
지수: (피하지 않고 웃으며, 또박또박) 응. 우리 준우 얘기.
태혁의 미소가 아주 잠깐, 1초쯤 멈춘다. 지수, 그 1초를 놓치지 않고 본다. 가방 속 결과지 모서리를 손끝으로 만지며.
지수: (내레이션) 그날 밤 나는 아내이기를 그만두었다. 그리고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. 간호사는 환부를 찾으면 — 도려낸다.
화면, 지수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암전.
— 1부 끝 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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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어둔 떡밥 (다음 부용)
1. 시모 정숙의 "피는 못 속인다" — 알고 한 말인가. 2부에서 시모가 진실을 알고도 덮은 공범임이 드러난다.
2. 이체 시작일 — 통장 첫 이체가 지수 결혼식 한 달 뒤. 양육비가 아니라 입막음 값이라는 단서.
3. 형 태준의 침묵 — O형인 본인이 AB형 아들을 의심 안 했을 리 없다. 태준이 받은 대가(상가주택 명의)와, 준우 이름을 태준이 지었다는 사실(거래의 서명)이 2부에서 공개.
4. 위조된 배우자 서명 — 정관수술 동의서 위조를 도운 병원 내부자. 지수와 같은 병원 사람이다.
5. 미란의 끊긴 말 "무슨 짓까지 했는지" — 준우 출생 무렵의 사건. 미란이 도망치려는 진짜 이유.
6. "간호사가 되기로 했다" — 지수의 복수는 약과 수치, 기록으로 이뤄진다. S#4~5에서 보여준 '차트 접근 능력'이 복수의 무기가 된다.
7. 준우의 알레르기(새우) — S#4에서 심은 설정. 후반부 사건에서 다시 쓰인다.